옻오리, 옻닭 등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옻 요리를 하는 나라다. 수백년 그 가치를 더해간다는 옻칠공예도 우리나라를 최고로 친다. 최근에는 된장?간장 등 전통 장류에 옻을 넣은 제품도 나오고 있다. 옻나무 명가를 꿈꾸는 충북 옥천군 박기영 씨, 그가 말하는 옻의 무한한 가능성과 가치.



예부터 어혈 없애는 데 으뜸

옻은 고대부터 도료로 매우 쓸모가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조선때 이미 옻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먹는 음식으로도 오래전부터 효능을 인정받아왔다.
중국 명나라 때 의학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을 보면“ 옻은 성미가 맵고 따뜻하며 독이 있다. 근육과 뼈를 강하게 하고 끊어진 상처를 낫게 하며 오장을 안정시켜준다. 몸속의 벌레를 죽이며 어혈을 풀어주고 기침을 멎게 하며, 속이 결리고 맺힌 것은 낫게 하고 요통을 치료한다”고 나와 있다. 또한 <동의보감(東醫寶鑑)>에도“ 옻나무는 적체를 풀고, 어혈과 부인병 등에 쓰인다”라는 기록이 있다.
옻은 봄에 새순이 나와서부터 가지?나무?뿌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쓰임이 있다. 옻나무는 한 개의 잎대궁에 작은 잎이 마주 붙는데, 너비 3~6cm의 끝이 뾰족한 타원형 잎이 한 대궁에 7~13개씩 달린다. 이른 봄 새순을 꺾어 생으로도 먹고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한다.
박기영 씨는“ 옻순을 먹는 민족은 세계에서 우리 민족뿐이다. 옻순은 산채에 속하는데 4월말부터 5월 초까지만 채취가 가능해 그 시기에만 맛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옻순이 나온 뒤인 6~8월, 옻나무 껍질에 상처를 내면 독특한 냄새의 잿빛 진이 나오는데, 이것이 잘 알려진 옻이다. 피부가 약하고 체질이 민감한 사람이 옻에 닿으면 몸이 가렵고 살이 부르트고 통통 부어오르는데, 이는 우루시올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성분 때문에 옻은 방부제나 살충제 역할도 한다. 다시 말해, 인체의 세포를 보존해 상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의학 서적에도“ 위를 따뜻하게 하고 염증을 없애며, 간에서도 어혈을 풀고 염증을 다스린다. 폐에서는 살충제가 되어 결핵균을 없애는 효과도 있다”고 되어 있다.


옥천이 옻나무 명가가 된 이유

옥천군은 5년 전 기획재정부로부터 옻 산업특구로 지정됐다. 당시만 해도 옻 주산지 하면 강원도 원주, 경상남도 함양이 대표적이었다. 그래서 옥천군의 옻특구 선정은 더 화제가 됐다. 하지만 옥천은 <세종실록지리지>에 공납품으로 옻나무가 거론될 정도로 널리 알려진 곳. 옻 산업특구로 지정됨으로써 명산지의 맥을 다시 잇게 된 것이다.
여기에 국내 옻 주산지에서 두루 지내본 박기영 씨가 크게 한몫했다. 옻나무 재배와 가공 등 지역 특산물을 문화원으로 키워서 농촌을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청성면 고당리에 정착한 것.
“어린 시절에는 원주에 살면서 아버지와 함께 옻나무를 보고 만지며 자랐고, 젊은 시절에는 함양 마천지역에서 지냈어요. 그리고 2004년 이곳 옥천에 귀농 터를 잡으면서 옻나무를 재배하게 됐으니, 남쪽의 옻나무 주산지는 다 살아본 셈이죠. 오랜 시간 보고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옥천 지역 옻 농가들과 함께하게 됐어요.”
옥천군이 전국에서 최초로 옻 산업특구를 받은 데 대해서도 박씨는“ 옻나무를 단순한 생산 작물로 보지않고 자원으로 가공해야 한다. 또한 옻나무를 세계화해서 산촌의 소득을 올리고 산촌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인근 주민과 함께 5만여 주에 가까운 나무를 가진 옥천 옻나무영농회를 만들어 옻나무를 심고 가공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옥천군에서도 본격적으로 재배 면적을 늘려 현재 300명 가까운 농가가 100ha에서 옻나무를 재배하고 있다. 2012년까지는 78억원을 들여 옻 가공·칠 산업육성과 다양한 관광 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옻나무와 관련된 특허도 군에 기증해 옻을 재배하는 농가들과 이익을 나누고 있다.


옻나무의 1년, 박기영 씨의 1년

옻은 여름철 고온다습한 기후에서 잘 자란다. 혹시라도 다른 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논이 아니라 외곽이나 야산의 밭에 재배해야 한다. 박기영 씨는“ 옻나무는 재배할 때는 괜찮은데 수확할 때 자르면서 상처가 나면 옻오름 현상이 밭 전체에 퍼져요. 옻나무 재배는 수입도 괜찮고, 쓰임도 다양하지만 이런 위험성 때문에 농가들이 쉽게 도전하지 않아요”라며 옻나무 재배에서의 어려움을 전한다.
재배하는 데 이런 어려움이 있지만, 옥천군의 옻나무는 4월 말이나 5월 초 옻순축제로 농가에 첫 소득을 안겨준다. 박기영 씨는“ 3년째부터 잔가지를 많이 내서 순이 많이 나도록 재배를 달리한다. 1kg에 1만원 정도에 판매될 정도로 인기가 높아, 재작년부터 옻순 경매도 이뤄지고 옻순축제에 찾아오는 소비자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초여름 옻진을 채취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그는 “옻나무가 7~8년 됐을 때 나무에 흠집을 내면 수액을 분비하는데 이걸 옻진이라고 한다. 이걸 모아서 수액 형태로 판매한다”고 설명했다.
옻 산업특구로 지정되면서 대량으로 심은 옻나무들은 올해부터 시험적으로 수액 채취를 시작한다. 하지만 옻 수액을 채취할 수 있는 사람은 채 200명도 되지 않는다.
이 중에도 옻칠공예가나 자가 채취 농가를 제외하면 채취 전문가는 100명도 안 된다. 그래서 수액 채취를 잘할 수 있도록 농가를 상대로 해마다 교육을 하고 있다.
옻나무 수확은 12월부터 2월 초까지다. 옻나무는 잘라내어 껍질과 안쪽 부분을 분리하고, 건조시킨 뒤 찌는 과정을 거친다. 완전히 건조시키면 옻이 오르지 않는다. 올해 첫 시험 수확해서 이달까지 탈피 작업을 할 예정으로, 농업법인 참옻들 소속 세 농가가 모여서 작업한다. 농업법인 참옻들은 옻나무의 생산뿐만 아니라 산지 가공 유통 회사 역할도 한다.
“여름에 옻진을 먼저 내고 겨울에 나무를 잘라요. 옻진을 먼저 내면 나무가 위협을 느껴서 유효 물질을 더 많이 만들어내기 때문에 가치가 더 높아지죠.”
최근에는 친환경 농법에 옻을 이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배 등 과수 농가에 친환경 농법으로 사용했는데, 효과가 속속 나타나 친환경 농자재로서의 가능성이 충분해서다.
청성면 고당리 지역은 특히 물이 좋다. 물에 게르마늄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끓였을 때 옻나무에서 유효 성분 추출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추출 양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옻은 다른 물질과 더하면 면역력 강화, 아토피 치료 효과까지 있어 오는 3월경 옻체험마을을 열어 도시민을 맞을 생각이다.


먹는 옻, 이젠 제품도 다양해질 것

옻나무는 독성 물질인 우루시올이라는 성분이 들어있어, 식품 원료로 쓰지 못하도록 식약청에서 규제해 왔다. 그러다가 지난 2002년 그 성분을 제거한 제품에 대해서는 별도의 인정을 받아 사용하도록 하면서, 옻의 약리적인 성분이 곳곳에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박기영 씨는 한발 앞서 준비했다. 나무 재배와 함께 옻된장을 만든 것이다. 옻된장은 우리 조상이 옻을 덜 타게 하기 위해 발효 공법을 이용한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된장에 옻나무를 넣어 3년간 숙성해 만들어요. 콩 1kg에 3,000원이라고 했을 때, 메주를 만들면 6,000원, 다시 된장으로 변하면 1만 2,000원이 돼요. 2배씩 단가가 올라가는 거죠. 여기에 옻을 더해 또다시 2배의 가치로 만들고 있습니다”라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옻된장은 찌고 말리는 나무를 끓여서 그 액체에서 단백질을 만들어서 뺀다. 옻된장에는 옻 성분이 0.5% 들어 있다. 여기서 빠지는 것으로 옻간장을 만든다.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는 옻된장 요법도 미리 만들어둔 것이 5년 차가 되는 올해부터 할 예정이다. 그가 만드는 된장은 5년 이상 된 된장만 예술품으로 인정하는 농어업예술위원회에서 유일하게 인정받았다.
또 하나 특이한 전통 장은 바로 어육장(魚肉醬). 우리가 먹는 된장은 식물성 단백질인 콩을 이용한 데 비해, 어육장은 동물성 단백질을 저장, 발효, 숙성한 것이다. 땅속에 된장 독을 묻어 전복, 쇠고기 양지머리, 꿩을 된장과 섞어 만든다.
이 밖에도‘ 옻 오르지 않는 참옻 티백’‘, 옻소금’을 만드는 등 옥천 지역을 새로운 옻의 명산지로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
역사가 오래된 우리나라 옻 산업은 최근‘ 도료’에서 벗어나 식품, 의약품, 생활용품까지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박기영 씨의 말처럼 옻을 재배에서 가공, 관광분야까지 종합적으로 개발한다면, 농가에게는 자부심으로, 소비자에게는 건강으로 값지게 돌아갈 것이다
문의 전화 043-733-0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