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군에는 선운산이 있고, 그곳에 선운사란 유명한 고찰이 있다. 사람들은 선운사를 돌아보고 내려와서는 절 아래 마을의 풍천장어집에서 여행의 피로를 풀 겸 쉬며 요기를 한다. 풍천장어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장어요리에 곁들여 마시기 좋은 것이 복분자술. 이 술에 장어요리를 먹으면 보양식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풍천장어와 복분자술을 찾아가는 길은 맛길이면서 또한 멋길이다. 이 두 음식은 전북 고창지역의 명물이다. 고창에는 그 유명한 선운사 동백꽃이 있으며, 미당 서정주 문학의 모태가 된 질마재마을이 있다. 고창읍성, 신재효 고택, 인촌 김성수 생가 등도 있고, 모양성밟기 등의 민속행사도 전해진다. 그러니 미각여행 자체가 멋스런 여행이요, 문화유산 답사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2000년 말에 작고한 미당 서정주는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질마재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곳에는 현재 미당기념사업관이 있다.
우리 나라 사람 가운데 미당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그는 ‘귀촉도’, ‘추천사’, ‘국화 옆에서’, ‘동천’ 등의 시를 통해 우리 민족의 정한을 가슴 뭉클하게 드러내 보인 대표적인 시인이다.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머언 바다로/배를 내어 밀듯이,/향단아//이 다수굿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벼갯모에 뇌이듯 한 풀꽃뎀이들로부터/아조 내어 밀 듯이,/향단아//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눌로/나를 밀어 올려다오/채색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다오!//서으로 가는 달같이는 갈 수가 없다.//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그렇게 나를 올려다오/향단아.
미당의 시 ‘추천사’ 전문이다. 여인의 청춘환희와 영원한 생명에의 동경을, 춘향의 가슴에 차오르는 열정과 그것을 가누지 못해 몸부림치는 생명감으로 나타냈다. 이 시나, 우리 민족의 샤머니즘, 토테미즘을 근간으로 한 ‘귀촉도’ 혹은 ‘국화 옆에서’ 같은 명시를 떠올리며 고창을 찾으면 여행길이 한결 더 운치 있을 수 있다. 고창땅에 이르러 가장 먼저 걸음할 만한 곳은 선운사이다. 선운사 입구에도 ‘선운사 동구’란 미당의 시 전문이 새겨진 그의 시비가 세워져 있어 고창이 그의 숨결이 얼마나 많이 묻어나는 고장인가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선운사는 동백꽃이 만개하는 5월에 찾는 것이 좋다. 동백나무는 보물 제290호로 지정된 그 절의 대웅보전 뒤쪽에 무리지어 서식하고 있다. 5,000여 평 면적에 키가 6m쯤 되는 것들이 3,000그루 정도 자란다. 언제 누가 심었는지는 알지 못하나 수령 500년쯤 되는 것들도 많다. 이 동백나무 숲은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돼 있다. 선운사에 온 이들마다 그 숲 가까운 곳에 올라가 어정거린다.
그들이 그 산사를 찾는 이유도 사실은 동백꽃 때문이다. 동백꽃은 말갛게 미끄러져 내리는 5월 햇살 아래 진홍빛으로 타오른다. 진초록의 두꺼운 잎들 사이로 무수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하나 같이 복스럽고 귀태(貴態)나는 모습들이다. 꼭 관능미 넘치는 여인의 루즈 바른 입술 같다. 동백은 색(色)이다. 색 주위로 또 다른 색들(관광온 젊은 미녀들)이 물결처럼 지나다닌다. 그런 색들을 늘 머리맡에 두고 수도하는 승려들은 어떤 기분일까. 그들은 꽃과 여인들을 가까운 데에 두고서 색을 견뎌내고 극복하는 훈련을 하는 것인가. 수도승들이 이렇듯 색의 바다에서 색 아닌 것을 찾는 수행을 할 것을 상상하니 미묘한 심사가 뒤따르는 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사람들은 선운사를 돌아보고 내려와서는 절 아래 마을에 늘어서 있는 풍천장어집에서 여행의 피로를 풀 겸 쉬며 요기를 한다. 풍천장어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이다. 선운사 아랫마을의 풍천장어구이는 식도락가가 아니더라도 그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스태미나음식으로 이만한 것도 드물다. 장어는 여성의 피부미용에도 좋고 노화방지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풍천(風川)은 장어가 서식하기에 알맞은 조건을 지닌 이 지역의 하천이다. 장어는 깊은 바다로 나가 산란하는데, 알에서 깨어난 치어(稚魚)는 봄철에 바닷물과 민물이 어울리는 하천으로 올라와 자란다. 풍천은 이처럼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하천이어서 장어가 살기에 적합하다고 한다. 이 일대 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장어를 잡아 별미로 이용해 왔다.
요즘은 자연산 장어가 드물어 대부분 양식한 장어를 쓴다. 선운사 아랫마을에는 ‘옛날집’(063-562-0592)을 비롯한 풍천장어 전문음식점이 26개나 있다. 이들 음식점에서는 각종 양념으로 맛있게 요리한 장어구이를 판다. 풍천에서 장어를 잡아 먹던 풍습이 선운사 관광과 어우러져 오늘에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 장어요리가 왜 맛있는지 아셔요? 그건 장어 뼈를 스물 네 시간 푹 곤 국물에다 고추장, 마늘 등 스무가지 양념을 넣고 팔팔 끓여 만든 양념장 덕분이에요. 이 양념장을 골고루 잘 발라서 약한 불에 오래 구워내니까 맛이 좋은 거예요.” 옛날집 이은자씨의 말이다. 그녀의 남편 김용환씨는 이런 말도 들려준다.
“여기 장어에 치는 소스는 맛이 확실히 달라요. 사람들이 그 맛에 끌려 오는 겁니다. 정기적으로 오는 이들이 적지 않아요. 20년간 다니는 단골도 있어요.” 자연산 장어는 거의 없지만 그와 비슷한 장어들은 많다. 소위 ‘노지장어’이다. 이것이 양식장어와 다른 점은 사료를 먹여 다 키운 다음 방죽에 넣어 1년 정도 내버려둔다는 데 있다. 노지장어는 1년 동안 사료없이 방죽의 미생물만 먹으며 버틴다. 그러는 동안 살이 내리고 기름기가 빠진다. 노지장어는 약간 푸석푸석한 양식장어와 달리 쫄깃쫄깃하다. 양식장어는 노란색이지만, 노지장어는 약간 검은 색을 띤다. 값도 노지풍천장어가 2배 정도 비싸다.
장어요리에 곁들여 마시기 좋은 것이 복분자술이다. 복분자는 딸기의 일종인데 고창 일대에서 많이 난다.
이것을 먹으면 사기요강이 넘쳐 흐를 정도로 양기가 세어진다고 한다. 따라서 복분자술에 장어요리를 먹으면 보양식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장어음식점마다 이 술을 곁들여 내놓고 있다. 맛이 달콤하고 향기가 좋으며 색깔도 붉어 보기에도 그만이다. 첫맛이 포도주처럼 부드럽고 신선한데, 마신 뒤에는 진한 딸기향이 감돈다.
장어집에서 장어요리에 복분자술을 한 잔 들이키고 있으려니까 다시 좀 전의 그 수도승들 생각이 난다. 선운사는 색의 바다일 뿐이 아니다. 장어 굽는 냄새도 진동하고, 술냄새도 가득하다. 거기에 행락객들의 흥청거리는 소리도 넘쳐난다. 그럴진대 그곳은 분명 욕계(欲界)요, 적나라한 색계(色界)이다. 그런 속에서 승려들은 정녕 무색계(無色界)를 이루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정녕 위대한 일이다. 색(色)과 육(肉)과 주(酒)의 바다에서 엠티(empty)가 아닌, 텅빈 충만(空)을 일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일 수가 없다.
선운사 경내를 돌아보고 이처럼 풍천장어에 복분자술을 곁들이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치고 그냥 고창땅을 떠나기에는 아깝다. 고창처럼 문화유산이 풍부한 고장도 흔치 않기 때문이다. 신재효 고택이나 미당기념관 정도라도 더 답사하고 돌아가는 것이 낫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안된다.